그 냄새를 기억하는가? 지하철 역사의 절대 강자 델리만쥬의 아성을 넘은 빵 하나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빵이라던 홍보 문구를 달고 나온 '번'. 10여년 전 국내 커피번 열풍의 중심엔 로티보이가 있었다. 로티보이는 2007년 국내에 상륙한 번 프랜차이즈로 영업 1년 만에 매장은 150개 넘게 불어났다. 동네 곳곳마다 익숙한 빵모자 로고가 보였다. 하지만 로티보이는 한국에 들어온지 겨우 5년 만에 최종 부도를 선언했다. 현재 남아 있는 매장 수는 20여개 남짓에 불과하다. 요즘 SNS를 중심으로 로티보이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묻는다.
잘 나가가던 로티보이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 동네 빵집에서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로티보이의 창립자 히로 탄(Hiro Tan)은 종종 조카에게 직접 빵을 구워주곤 했다. 그때마다 참 맛있게 먹는 조카의 모습을 보고 히로는 '빵집을 열어볼까' 생각한다. 그는 1998년 말레이시아 페낭의 작은 마을에서 빵집을 여는데 바로 로티보이의 출발이었다. 로티보이 로고에 담긴 소년의 해맑은 미소도 바로 히로의 조카에게서 따온 모습이다.
로티보이의 주력 상품은 멕시코 레시피를 기초로 해서 만든 번. 겉은 커피향이 나는 바삭한 외관에 속은 버터로 촉촉해 입맛을 돋운다. 번은 맛있는 데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입소문을 타고 많은 손님을 끌어 모았다. 히로는 여기서 가능성을 엿보고 2001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당시 매장 한 군데서만 번이 2만 개가 팔릴 정도로 로티보이는 성황리에 자리잡았다.
로티보이는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성공을 기점으로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및 중국 등지로 매장을 늘려갔다. 국내엔 2007년 3월 권주일 외식과창업 대표가 로티보이 본사로부터 국내에 들여와 로티보이베이크샵코리아(이하 RBK)로 시작했다. 이화여대 1호점을 시작으로 국내 진출 첫 해를 넘기기 전 63호점까지 문을 열었다.
번 하나라는 단일 제품으로 승부가 될까? 라는 우려도 잠시. 이전에 국내에서 잘 볼 수 없던 이색적인 빵인데다가 특유의 맛과 향으로 고객들을 사로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라는 홍보 문구가 입소문을 타며 사람들은 줄서서 먹기도 했다. 로티보이를 따라한 유사 업체들까지 여러 개 생겨나면서 국내에 번 열풍이 일어났다. 로티보이는 2008년 12월 가맹점 147호점을 돌파하며 가맹점 200호점을 목표로 가속질주했다.
❏ 200호점 목전에 두고 부도난 이유
그런데 번 열풍에도 불구하고 RBK는 2012년 2월 최종 부도 선언을 했다. 부도 직전 국내 매장 수는 96개로 이전에 비해 대폭 줄어있었다. RBK의 부도 원인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유사 브랜드 난립으로 인한 과당경쟁이다. 로티보이가 인기를 끌자 파파로티, 파파앤번, 로티맘 등 번 전문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했다. '로티'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브랜드만 5개를 넘어갔다. 제과제빵 프랜차이즈들도 번을 출시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색 음식'이라는 특징은 무색해졌다. 로티보이를 제외한 로티팜스, 미스터로티 등 7개 번 전문 브랜드의 점포 수는 모두 합쳐 2009년 259개에 달했다. 당시 로티보이는 164호점을 열었을 무렵이다.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로티보이만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국 번은 특색없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한 업종이 흥하면 비슷한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은 비단 번만의 상황은 아니다. 벌꿀 아이스크림 전문점 소프트리는 2014년 경쟁업체인 밀크카우를 상대로 제품 모방 판매를 금지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디자인 침해를 인정받았지만 항소심에선 모방 제품이 아니라는 판결이 났다. 상품 유사성은 인정되지만 동종 제품이 통상적으로 갖는 형태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음식은 대개 저작권을 인정 받기 어려워 벤치마킹이 빈번하게 일어나곤 한다. 대만 카스테라, 흑당 버블티, 로제 떡볶이 등도 마찬가지다.
한편, 번 단품으로만 승부했던 것도 부도 원인을 제공했다. 치즈, 모카 등 다른 맛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경쟁업체가 왕성한 가운데 차별점으로 삼기엔 약했다. 과당 경쟁과 단일 제품으로 인한 경쟁력 상실은 경영 악화로 이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자료에 따르면 2008년 RBK의 영업이익은 13억 9889만 원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1502만 원, 2010년 -4억 265만 원으로 갈수록 적자가 커졌다. 결국 RBK는 2012년 만기가 돌아온 어음을 결제하지 못하고 최종 부도처리된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당시 RBK의 부도 책임을 두고 RBK와 로티보이 본사와의 진실 공방이 이어졌다. 권주일 RBK대표는 본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식재료를 제때 공급하지 않아 부도가 났다고 주장했다. 본사는 RBK의 경영 부실로 계약해지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엇갈린 주장이 오가던 중 로티보이 가맹점주들도 살 길을 모색했다. 다음 카페 '로티보이 12345'를 개설해 점주들끼리 정보를 나누고, 부족한 부자재를 서로 교환해가며 로티보이의 이름을 지키고자 했다.
다행히 RBK의 부도가 곧 로티보이의 종말은 아니었다. 로티보이 말레이시아 본사는 로티보이를 기존 마스터 프랜차이즈 방식*에서 지사로 운영방식을 전환했다. 즉, 한국 지사가 가맹본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으로 중간단계는 사라졌다. 당시 로티보이 한국 지사는 폐점을 준비하는 일부 매장을 제외한 80% 가량의 매장과는 재계약하며 가맹점주 살리기에 나섰다.
*마스터 프랜차이즈 방식 : 본사가 해외에 직접 진출하는 대신 진출하고자 하는 해당국의 파트너와 계약해 자사의 브랜드 가맹사업운영권을 정해진 기간 동안 판매하는 방식
로티보이가 국내에서 최종 부도 선언을 한지 10여년이 지났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로티보이를 추억하는 게시글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맛있었는데 요즘 볼 수 없다며 아쉬워하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로티보이 매장 수는 20여개 남짓으로 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로티보이는 개인 카페들에 번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다각화하며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굽는 중이다.
제작 조지윤ㅣ 디자인 조은현
inter-biz@naver.com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계는 약육강식인데 인간사회는 왜 약자를 살려두나요 (0) | 2022.04.23 |
---|---|
모르면 용감하다…더닝크루거 효과 (0) | 2021.12.17 |
일의 기쁨과 슬픔 (0) | 2021.09.14 |
회색 중국어와 차부뚜어 선생 (0) | 2021.07.03 |
저성과자를 키우는 코칭 방법 - HSG 휴먼솔루션그룹 (0) | 2020.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