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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문화 2021. 9. 1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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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제21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장류진 張琉珍


일의 기쁨과 슬픔
 

“합시다. 스크럼.”

오전 아홉시.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스크럼 시간이다. 스크럼이란 이천년대 초반부터 미국 씰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애자일 방법론의 필수 요소로, 우리 회사 같은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널리 쓰이는 프로젝트 관리 기법이다. 데일리 스크럼의 대원칙은 이렇다. 매일, 약속된 시간에, 선 채로, 짧게, 어제는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각자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에 스크럼 마스터가 전체적인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것. 서로의 작업 상황을 최소 단위로 공유하면서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애자일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스크럼이라면 이 모든 과정이 길어도 십오분 이내로 끝나야 했다. 하지만 우리 대표는 스크럼을 아침 조회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심히 문제였다. 직원들이 십분 이내로 스크럼을 마쳐도 마지막에 대표가 이십분 이상 떠들어대는 바람에 매일 삼십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럼, 제니퍼부터 해볼까?”

제니퍼는 디자이너인데 한국 사람이다. 회사가 위치한 곳이 씰리콘밸리가 아니라 판교 테크노밸리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영어 이름을 지어서 쓰는 이유는 대표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스타트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대표부터 직원까지 모두 영어 이름만을 쓰면서 동등하게 소통하는 수평한 업무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했다. 위계 있는 직급체계는 비효율적이라는 말이었다.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대표나 이사와 이야기할 때는 “저번에 데이빗께서 요청하신……” 혹은 “앤드류께서 말씀하신……” 이러고 앉아 있었다. 이럴 거면 영어 이름을 왜 쓰나? 문제는 대표인 데이빗이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수평문화 도입은 핑계고 촌스러운 자신의 본명—박대식—을 쓰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어 이름 사용의 폐해는 또 있었다. 이름만 부르고 존칭을 생략하기 때문에 연장자가 말을 놓기 더 쉽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나는 본명이 ‘김안나’라서 영어 이름도 그냥 ‘Anna’로 하고 입사했더니 여기저기서 안나, 안나 거리면서 은근슬쩍 말을 놓는 통에 불릴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상의 자아와 분리 가능한 새로운 영어 이름을 지었어야 했다. 예를 들면 ‘올리비아’라든지.

대표를 포함한 전체 직원 열명이 각자의 책상을 등지고 선 채로 동그랗게 모여 스크럼을 진행했다. 마지막 순서인 내 차례가 끝나자마자 대표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안나, 거북이알 말이야. 이거, 이거. 어떻게 할 거지?”

대표는 자신의 등 뒤에 세워진 화이트보드에 ‘거북이알’이라고 쓰고 그 위에 동그라미를 여러번 치더니 이내 손으로 문질러 글씨를 지워버렸다. 대표의 손바닥이 새카매졌다.

“아휴, 나는 거북이라는 글자조차 보기가 싫은 사람이란 말이야.”

‘거북이알’은 우리가 만들고 있는 앱 서비스인 ‘우동마켓’에 글을 가장 많이 올리는 사용자였다. 우동을 파는 회사는 아니고, 스마트폰의 위치를 기반으로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앱을 만드는 회사였다. 우동마켓은 ‘우리 동네 마켓’의 준말인데, 우동 한그릇을 후루룩 먹듯이 쉽고 간편하게 중고거래를 할 수 있다는 속뜻도 가지고 있다고, 데이빗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바 있다. 잘 지은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앱 중에 그래도 어느 정도는 우위를 점하고 있는 편이라 스타트업으로서 제법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사용자를 모으는 데 안착했으니, 이제 여기에 지역광고를 붙이는 게 회사의 다음 목표였다. 동네 주민들이 올린 중고물품—버리기에 아까운 가구, 작아져버린 아이 옷, 아직 쓸 만한 전자제품—사이사이에, 지역 타기팅이 확실히 보장된 광고—새로 오픈한 헬스장, 인테리어 업체, 사진 촬영 스튜디오—가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연말까지 광고플랫폼 개발 완료, 광고 영업, 광고 판매. 그때부터 우동마켓은 본격적으로 돈을 번다. 대표와 이사의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거북이알은 몇주 전부터 강남과 판교 지역에서 하루에 거의 백개씩 글을 올리고 있었다. 이것만 해도 일반적인 사용자로 보기는 힘든데, 더 특이한 점은 중고물품을 파는 게 아니라 뜯지도 않은 새 상품을 판다는 것이었다. 가격은 늘 인터넷 최저가보다 조금씩 싸게 책정해두었다. 내용은 거의 쓰지 않았다. 상품명, 모델명, 직거래 및 택배 모두 가능. 더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파는 물건에도 일관성이 없었다. 공기청정기, 청소기, 캡슐커피머신을 올릴 때는 전자제품 직구해다 파는 놈인가…… 싶었는데 파운데이션, 바람막이, 홍삼, 레고가 올라오자 나는 서비스 기획자로서 무척 혼란스러워졌다. 그래도 거래 성사율이 백퍼센트인데다 거북이알의 프로필 페이지 밑에는 실제 거래한 사람들의 훈훈한 댓글들—좋은 물건 싸게 팔아주셔서 고마워요!—이 달렸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표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우리 서비스의 취지와 맞지 않는 사용자를 이대로 둬도 될까? 앱을 딱 켜고 들어왔는데 온통 거북이알의 글로 도배되어 있으면, 사용자들이 우리 서비스를 ‘우리 동네 중고 마켓’이라고 생각할까? 이쯤 되면 어뷰저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지. 어떻게 페널티를 줄 수 없을까?”

대표 옆에 서 있던 앤드류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 프로필 사진. 실제 거북이 얼굴의 근접 사진이잖아요. 너무 징그러워서 쳐다볼 수가 없어. 내가 파충류를 얼마나 싫어하냐면 군대에 있을 때 말이야, 당직을 서고 내무반으로 돌아가는 길 한복판을 이만한 도마뱀이 가로막고 있는 거야.”

대표가 양손을 자기 어깨너비로 벌렸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이만했다니까. 그래서 그 도마뱀 때문에 날이 밝을 때까지 거기를 못 지나갔어. 그날 잠을 못 잤지. 내가 그렇게 파충류를 싫어한다구요.”

논점 이탈이 대표의 주특기였다. 나는 다시 화제를 돌려와야 했다.

“데이빗의 마음은 알겠는데요. 그래도 거북이알을 어뷰저라고 볼 수는 없어요.”

강강술래 대형으로 서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향했다.

“거북이알 때문에 지표가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다고요. 페이지뷰, 사용자 수, 재방문율 모두 거북이알 등장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요. 거북이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규가입자 수 비율도 매주 늘고 있어요. 게다가 거북이알의 거래성사율은 백퍼센트예요. 어뷰저가 아니라 오히려 충성 사용자라고 보는 게 맞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표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적당히 올려야지.”

그러고는 우동마켓을 실행시켜 타임라인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이것 좀 보라구. 내가 스크롤을 열번 내릴 때까지 죄다 이놈의 거북이 글뿐이라구.”

거북이알처럼 한 사용자가 너무 많은 글을 올릴 경우 노출 비중을 줄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대표가 제안했다. 서버 개발자들이 한숨을 쉬었다. 그거 개발하는 데만 몇주가 걸리는 줄 아느냐, 연말까지 광고플랫폼 붙이기로 한 것도 빠듯한데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대표를 공손히 나무랐다. 서서 스크럼을 시작한 지 벌써 사십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빨리 앉아서 일을 시작하는 게 우동마켓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대표는 스크럼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만약에, 장물이면 어떡하지?”

“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하루에 백개씩 뜯지도 않은 물건을 판다는 게. 이게 다 훔친 물건이면 어떡하냐는 거지. 횡령이거나. 그럼 아주 큰일이라구.”

나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대표가 말을 이었다.

“누군가 거북이알을 만나보면 어때요? 안나가 가볼까?”

“제가요?”

대표는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오만원짜리 지폐 두장을 내 손에 꼭 쥐여주었다.

“이걸로 거북이알이랑 만나서 아무거나 거래 좀 해봐. 아, 물론 산 물건은 안나가 가져도 돼요.”

나는 짜증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만나면요? 만나서 뭐라고 해요?”

“우리 서비스를 사용해줘서 고마운데, 너무 도배하지 말고 좀 적당히 올리라고 말이야. 한시간에 한개씩. 하루에 스무개 정도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리고 프로필 사진도 좀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구. 진짜 거북이 말고 닌자거북이라든지.”

 

사십오분 만에 스크럼이 끝났다. 우리는 마침내 각자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등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케빈의 것이다. 케빈은 아이폰 앱 개발자인데, 대표와 이사를 제외한 우리 회사 상전이었다. 나보다 나이는 두살이나 어린 ‘진짜 막내’였지만 데이빗이 옆 동네 포털사에서 모셔온 천재 개발자인 탓에 실질적인 서열은 3위라고 볼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 앱은 개발자 두명이 붙어 있지만 아이폰 앱은 여태 혼자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속도에 큰 차이가 없으니 솔직히 유능하긴 정말 유능했다. 하지만 컴퓨터와 대화하는 게 인간과 대화하는 것보다 더 편해 보이는 전형적인 개발자 스타일에, 평소에는 온순한 편이지만 코드가 잘 풀리지 않거나 버그가 잡히지 않을 때는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주변 사람한테 히스테리를 부린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상 막내’인 나였다.

나는 트렐로에 접속했다. 전날 내가 ‘문제’ 리스트에 만들어둔 ‘대표 사진 선택 버그’ 카드를 케빈이 ‘해결’ 리스트로 옮겨두었다. 자리에서 테스트를 해봤다. 여전히 잘되지 않았다. 나는 카드를 다시 ‘문제’ 리스트로 옮기고 댓글을 달았다.

사진 다섯장 이상 첨부 시 여전히 재현됨.

카드에 댓글을 쓰고 엔터키를 누르자마자 케빈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케빈이 다시 카드를 ‘해결’ 리스트로 옮기고 댓글을 달았다.

수정 및 반영 완료.

다시 테스트해보니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잘되지만 여전히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또다시 카드를 ‘문제’로 옮기고 댓글을 달았다.

iOS 최신 버전이 아닌 경우 여전히 재현됨.

이렇게 쓰고 엔터키를 누르자마자 갑자기 뒤에 있던 케빈이 뾰족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안나.”

나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고 뒤돌아봤다.

“네?”

“저는 잘되는데요. 빌드 버전 확인 한번만 해주세요.”

자기가 잘 못 고쳐놓고 맨날 나보고 확인하란다. 천재 개발자 맞나? 일단 속는 셈 치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케빈이 의자를 다시 책상 방향으로 돌리며 또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루보프 스미르노바가 연주하는 「환상소품집, Op. 3」을 들었다. 정신이 맑아지면서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들고 갑자기 긍정적인 마음이 되었다. 내일은 글렌 굴드, 모레는 조성진을 들을 것이다. 나는 우동마켓에 들어가 거북이알이 팔고 있는 캡슐커피머신 판매 글에 문의 댓글을 남겼다.

판교역에서 직거래 가능할까요?

순식간에 댓글이 달렸다.

가능합니다. 점심시간에 만납시다.

뜻밖의 급한 전개에 당황했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빨리 해치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밤의 가스파르」로 바뀌었다.

 

세련된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쇼핑백을 건네며 말했다.

“물건 먼저 확인해보세요.”

한두번 해본 일이 아니라는 듯 능숙한 말투였다. 나는 쇼핑백을 벌린 다음, 상자의 위쪽을 열었다. 사진으로 봤던 은색 커피머신이 드러났다. 표면에 붙어 있는 얇고 투명한 비닐조차 떼지 않은 새것이었다. 나는 물건을 더 확인하는 척하면서 거북이알의 배 쪽을 슬쩍 봤다. 목걸이 형태의 사원증에 유비카드사의 로고와 함께 ‘혜택기획팀 차장 이지혜’라고 쓰여 있었다. 유비카드의 일부 부서가 옆 건물에 입주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잘나가는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현금으로 주실 거예요? 계좌이체 하실 거예요?”

나는 대표에게 받은 오만원짜리 두장을 거북이알에게 건넸다. 그녀는 “잘 쓰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뒤돌아서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닉네임과는 어울리지 않게 발걸음이 무척 빨랐다. 거북이알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곳에 나온 목적은 중고거래가 아니라 데이빗이 지시한 임무 수행이었다. 거북이알이 손톱만하게 보일 때쯤, 나는 그녀가 성큼성큼 걷고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저기요! 거북이알님!” 하고 외쳤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나는 한 블록 정도를 달려서 다시 그녀 앞에 섰다.

“저 궁금한 게 있어서…… 우동마켓에 물건을 엄청 많이 올리시던데요.”

별로 많이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찼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다 말을 이었다.

“그 물건들은 다 어디서 나시는 건가요?”

거북이알이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배 안 고파요?”

“네?”

“점심 안 먹고 나왔을 거 아녜요. 나도 샌드위치 사 먹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녀는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타벅스 간판을 가리켰다.

“뭐 먹으면서 이야기할래요? 내가 사줄게요.”

“아니요,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말씀하시기 싫으시면 그냥 안 하셔도……”

“포인트로 사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아요. 나 포인트 엄청 많아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을걸?”

거북이알이 갑자기 크게 웃었다.

 

*

 

“사실은 이게 다 루바, 그러니까 루보프 스미르노바 때문인데요.”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를 빨대로 한모금 들이켠 거북이알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목에 걸려 있던 사원증을 한 손에 들고 그 안에 인쇄된 유비카드 로고를 다른 한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회장이 클래식 마니아거든요.”

“알아요. 저도 인스타그램 팔로우하고 있어서요.”

“자기도 클래식 좀 듣나보네.”

유비카드사의 조운범 회장은 이십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인스타그램 쎌럽이었다. 처음에는 대기업 회장이 젊은 애들이나 하는 인스타그램을 한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져서 주목을 받았는데, 그걸 또 은근히 잘 활용했다. 해외 출장지에서 찍은 맥주 사진, 집에서 가족들을 위해 요리하는 모습, 마트에서 자기네 회사 카드로 직접 결제하고 있는 소탈한 모습이 은은한 필터가 입혀진 채로 올라왔고, 사람들이 열광했다. 회장의 인스타그램은 그가 클래식 애호가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창구이기도 했다. 해외 공연 소식이나 클래식계의 동향을 종종 업로드해줘서 클래식 팬 상당수가 그를 팔로우하고 있었다. 유비카드사에서 기획하는 클래식 공연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원래 거북이알은 유비카드사의 공연기획팀 소속이었다고 했다. 분기마다 한번씩 열리는 크고 작은 공연을 위해 아티스트를 선정하고, 협상하고, 초청해서 공연을 여는 일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는 팀이라고 했다.

“자기도 잘 알겠지만 재작년인가부터 루바가 아시아투어를 한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매번 헛소문이었죠. 그런데 작년 말에 도쿄에서 리사이틀한다는 뉴스가 나니까 사람들이 우리 회장 인스타에 가서 댓글을 막 달기 시작한 거예요. 회장님, 회장님, 루바 공연 열어주세요! 그러면서.”

팔로워들의 반응을 본 회장은 거북이알을 따로 불러 특별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루보프 스미르노바 내한공연 올해 안으로 무조건 성사시키게. 돈은 생각하지 말고.”

그러면서 특진이라는 보상까지 내걸었다는 것이었다.

거북이알은 겨우내 러시아를 세번이나 들락거리며 섭외에 열을 올렸다고 했다. 직장경력 십오년 동안 가장 열심히 일한 기간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면서, 그녀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결국 거북이알은 루바의 첫 내한공연을 성사시켰다. 회장은 크게 기뻐했고 다음 분기 특진을 약속했다.

“한창 실무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어요. 같이 일하던 인턴이 하나 있었거든요. 걔가 ‘차장님, 고객센터에서 루보프 스미르노바 내한하는 거 맞느냐고 문의가 너무 많이 들어온다는데요. 이제 홈페이지에 공지 띄우는 게 어떨까요?’ 그러더라고요. 보통 늦어도 육개월 전에는 공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죠. 국내에도 루바 팬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공지 띄우자마자 사람들이 우리 회장 인스타로 달려가서 또 댓글을 잔뜩 달기 시작한 거예요. 회장님, 회장님,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거북이알이 대외홍보팀에 보도자료를 요청하고 있을 무렵, 회장에게서 긴급호출이 왔다고 했다. 공지가 올라간 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회장실로 불려 갔는데 그때 이미 회장은 진노 상태였다고.

“얼굴이 귀까지 시뻘게져서는, 누가 마음대로 공지 올렸냐고 소리를 꽥 지르더라고요.”

“왜요?”

“자기 인스타에 제일 먼저 올리고 싶었나봐요.”

나와 거북이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테이블 아래까지 떨어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웃기죠? 웃긴 건 맞는데, 왜 나는 머리가 아플까…… 원래 보고 라인이 회장까지 있었으면 당연히 회장 컨펌 받고 공지했겠지요. 그런데 여태까지는 아티스트 확정만 되면 공지는 실무선에서 알아서 했단 말이에요. 난데없이 그걸 트집 잡을 줄은 몰랐어요. 내가 너무 바빠서 생각이 좀 짧긴 했죠. 우리 회장의 견고한 인스타 자아를 생각했으면 한번 더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그 일로 회장은 거북이알의 승진을 취소시키고 그녀를 다른 팀으로 발령 내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뭐, 좌천되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여기도 그렇게 할 일 없는 부서는 아니거든요. 오히려 카드사의 메인 업무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 기회에 새 업무 해본다 생각하자, 싶었어요.”

새로운 팀은 카드의 혜택 조건을 기획하고 혜택을 제공하는 파트너사와 제휴업무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한달 전, 거북이알이 처음으로 신규카드 혜택 기획을 맡아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었는데 회장이 예정에도 없이 갑자기 그 자리에 참석해서 깜짝 놀랐다는 것이었다. 회장은 피티 내내 무언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더니 질의응답 시간에 가장 먼저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 카드를 써야만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뭔가? 딱 하나만 꼽는다면 뭐라고 생각하나?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자신 있게 얘기했죠. 네, 이 카드를 쓰면 포인트를 두배로 적립해줍니다. 그랬더니 회장이 이러더라고.”

“뭐라고요?”

“그래? 그게 그렇게 강력한 유인이 되나? 사람들이 포인트를 그렇게 좋아하나?”

“다들 좋아하지 않나요?”

“그렇죠. 그래서 또 자신 있게 대답했지. 네, 좋아합니다!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글쎄요.”

“그렇게 좋은 거면 앞으로 일년 동안 이차장은 월급 포인트로 받게.”

회장은 재무팀과 총무팀에 그렇게 지시하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유유히 떴다고 했다. 이번에는 웃을 수가 없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게 말이 되나요?”

거북이알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에피소드는 사내에서 반년 정도 회자될 작은 규모의 사건이라는 거였다. 일년짜리, 오년짜리, 십년 내내 구전되는 더한 사건들도 많다고 했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일반 회사원들과 사고구조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나 행동에 의문을 갖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해야 돼요.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이상해져요.”

그달 25일,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거북이알은 유비카드 포인트를 조회할 수 있는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회장의 한마디에 정말로 월급이 고스란히 포인트로 적립되어 있었다. 그 커다란 숫자를 보는 순간, 거북이알은 심장께의 무언가가 발밑의 어딘가로 곤두박질쳐지는 것만 같은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회사 생활 십오년 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루바 공연 건 때문에 특진 취소되고, 팀 옮겨지고, 강남에서 판교로 짐 싸서 올 때도 눈물이 안 났어요. 그런데 그 포인트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막막해서.”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억지로 출근해서 하루를 보낸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거북이알은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포인트로 모닝커피 마시고, 포인트 되는 식당에서 점심 먹고, 포인트로 장 보고, 부모님 생신선물도 포인트로 결제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더 보내고 나서 그녀는 모든 것을 한결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원래 내가 받았어야 하는 건 포인트가 아니라 돈인데…… 사실 돈이 뭐 별건가요?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인 거잖아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죠.”

“어떻게요?”

“포인트를 다시 돈으로 바꾸면 되는 거잖아.”

그때부터 거북이알은 포인트를 돈으로 전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우선 잘 팔릴 법한 물건들을 포인트로 한두개씩 주문한 다음, 사진을 찍어서 중고거래 앱—내가 만들고 있는 우동마켓—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 만나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 쇼핑몰에서 바로 구매자의 집으로 배송을 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원래 가격보다 조금 더 싸게 팔아야 하잖아요. 또 직접 주문하고, 이렇게 사람 만나는 데 아무래도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하고…… 분명히 거북이알님이 손해 보는 게 있잖아요.”

“직원 아이디 넣으면 할인가로 살 수 있어요. 물건 주문하는 건 근무시간에 하죠. 이렇게 점심시간이나 외근 나가면서 직거래하고요. 개인 시간은 잘 안 써요. 내 나름대로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밸런스를 맞추고 있어요.”

왜 그 순간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거북이알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 우동마켓 직원이에요.”

거북이알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면서 대뜸 박수를 한번 딱, 소리 나게 쳤다. 기도하듯 모인 그녀의 두 손이 잠시 그녀와 나 사이에 놓였다.

“정말이에요? 내 은인을 여기서 만나네.”

거북이알은 우동마켓이 얼마나 쓰기 편한지, 얼마나 세심하게 잘 만들어진 앱인지, 비슷한 다른 서비스에 비해 어떤 점이 더 좋은지 등등 문자 그대로 고객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특히 그녀는 ‘게시물 끌어올리기’ 기능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중고까페 같은 데는 글이 뒤로 밀리고 나면 끌어올리는 것도 일이에요. 새로 글 쓰면서 내용을 다시 복사하고, 붙여넣기 하고, 또 사진 새로 첨부해야 하고…… 나처럼 여러개를 올리는 사람은 그걸 일일이 하는 게 귀찮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동마켓은 버튼 한번만 딱 누르면 바로 끌어올려지니까 너무 편하더라고요.”

끌어올리기 기능은 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기획한 것이었다. 어뷰징을 막기 위해 삼일에 한번씩만 사용할 수 있게 해두었다.

“채팅 기능도 편하고, 구매자를 평가할 수 있는 기능도 잘 쓰고 있어요. 그런데 이미 올린 글의 대표 사진을 바꾸려고 할 때 가끔씩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글쓰기 화면에서는 바뀌어 있는데 확인 버튼을 누르면 그대로예요.”

그건 이미 알고 있는 문제였다. 케빈이 열심히 고치고 있을 것이다.

“그 버그는 파악해서 수정하고 있어요. 다음번 업데이트 받으시면 아마 잘될 거예요.”

거북이알은 크게 기뻐하면서 앱스토어에 꼭 별점을 남기겠다고 했다.

 

우리는 까페 밖으로 나왔다. 완연한 봄, 여름으로 다가가고 있는 봄을 느꼈다. 전날까지만 해도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초봄이었는데, 목덜미에 따뜻한 햇볕이 느껴지면서 등에 살짝 땀이 배기 시작했다. 목에 사원증을 건 회사원들이 얇은 트렌치코트를 저마다 팔뚝에 걸친 채로,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 직장인들이 몸을 움직이고 볕을 쬘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케빈이 다녔다는 포털사의 사원증을 목에 건 무리가 우르르 지나갔다. 나야 전에 일하던 에이전시가 망하고 나서 불러주는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 온 거지만, 대체 그렇게 똘똘하다는 케빈이 왜 우동마켓에 왔는지 궁금한 적이 있다. 대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연봉은 광고 붙이고 나면 그때부터 잘 챙겨주겠다”여서 돈으로 유인한 것도 아닐 텐데, 싶었다. 의외로 대표가 케빈에게 내민 카드는 “개발적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겠다”였다고. 겨우 그런 말로 설득을 한 것도 신기했지만, 고작 그런 말로 설득이 된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래서 케빈은 지금 ‘개발적으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나 모르겠다. 매일 나오는 버그 잡기 바쁜 것 같은데.

거북이알은 외근이 있어서 차를 세워둔 판교역 근처의 주차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길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함께 육교에 올랐다. 그런데 계단을 다 올라가고 나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육교가 길 건너편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다시 우리가 있던 쪽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육교가 도로를 가로질러야 하는데, 도로와 평행하게 놓여 있었다. 거북이알이 내게 물었다.

“이상하네. 이걸 육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설계를 잘못한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하면 육교 아래쪽에 그늘이 생기니까 비나 햇볕을 피하라고 만들어놓은 건 아닐까요.”

“직장인들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만 있으니까 잠깐이라도 운동하라고 만들어놓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조형물일 수도 있어요. 법으로 정해두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만든 것 같은 성의 없는 조형물이 건물마다 하나씩 있으니까.”

“어떡할까요?”

“다시 내려가야죠, 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 있으니까 되게 잘 보이긴 하네요.”

거북이알은 육교의 중간쯤에서 난간 쪽으로 다가가더니 거기에 양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나도 그녀 옆에 다가가서 주변 풍경을 둘러봤다. 표면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빌딩들이 빼곡하게 펼쳐져 있었다. ‘테크노밸리’라는 이름을 너무나 의식한 탓에 지나치게 미래적으로 지어진 건물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SF영화에서 본 비정한 우주도시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테크노밸리에도 겨울이 지나면 물이 흐르고, 봄이 오고, 벚꽃이 예쁘게 피고, 또 여름이 올 것이다. 거북이알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우와. 저기 엔씨 빌딩 진짜 멋지다.”

판교에서 가장 큰 게임 회사인 엔씨소프트 사옥이었다. 회사 규모만큼 건물의 크기도 압도적이었다. 내가 말했다.

“저 건물에 유리 한두장 정도는 제가 붙였다고 봐야 할 거예요.”

“리니지 하나봐요?”

“예전에요.”

“이 동네에는 스타트업도 많죠?”

“엄청 많아요. 저희가 입주해 있는 건물에도 대여섯개는 있을걸요.”

“어디서 읽었는데, 전체 스타트업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비율은 3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때요, 우동마켓은 성공할 것 같아요?”

나는 다시 엔씨소프트 사옥을 바라봤다. 거대한 건물 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다. 옆으로 길쭉한 ‘ㅁ’자 같은 모양새였다. 그 사이로 한낮의 쨍한 하늘이 보였다. 사원증을 걸고 커피를 들고 돌아다니다 보면 누구나 한번씩 올려다보게 되는 네모난 하늘이었다. 나는 액자 틀을 두른 것 같은 네모반듯한 하늘을 볼 때마다 그 속으로 무언가가 통과해 지나가는 상상을 했다. 용, 새떼, 열기구, 헬리콥터.

“글쎄요. 저희 대표나 이사는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하겠죠? 어떻게 돈 끌어오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3퍼센트의 성공한 스타트업이 될지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느라 걱정이 많을 거예요. 전 퇴근하고 나면 회사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나도 그래요. 사무실 나서는 순간부터는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 뽑아두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요. 예를 들면 거북이라든지, 거북이 사진이라든지, 거북이 동영상이라든지.”

내가 고개를 돌려 거북이알을 쳐다봤을 때 그녀는 이미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첩을 스크롤하고 있었다. 그리고 클로즈업으로 찍힌 거북이 옆얼굴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거북이의 눈 밑이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귀엽죠? 우리 집 거북이예요. 이름은 람보.”

그녀가 덧붙였다.

“람보르기니의 람보.”

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조금 전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거북이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얘는 둘째 마쎄.”

“……라띠?”

“오, 그렇지.”

그녀는 신이 나서—역시나 방금 두마리와 그리 다르지 않은—거북이 사진을 한장 더 골라 내밀었다.

“얘가 막내고.”

“페라일까요? 페라리의.”

“자기, 엄청 똘똘하구나.”

나는 지갑을 꺼내면서 거북이알에게 물었다.

“우동마켓에 올려두신 물건이요. 한개 더 살 수 있을까요?”

 

*

 

사실 회사에서 울어본 적이 있다. 거북이알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케빈의 한숨 소리가 너무 신경 쓰여서 찰나의 순간만큼 짧게 운 적이 있었다. 화장실 문을 발로 세게 걷어차던 순간이었다. 문을 탕, 하고 걷어차는 순간 와륵, 눈물이 났고 그게 다였지만, 그걸 두고 울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거북이알의 차 트렁크에 있던 작은 레고를 하나 샀다. 케빈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과 같은 스타워즈 시리즈였다. 레고를 좋아한다는 건 케빈이 입사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표의 인맥을 통해 모셔오는 인재라 입사가 거의 확정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면접을 아예 안 볼 수는 없지 않냐며 마련한 형식상의 면접 자리에서였다. 서너개의 개발 관련 질문이 끝나고 대표가 케빈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우리 회사는 소규모잖아요. 그래서 개발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랑도 잘 어울릴 수 있어야 하거든요. 열명도 안 되는데 트러블이 생기면 여기는 피할 수도 없는 곳이잖아. 매일 봐야 하니까. 그래서 어떤 쏘셜함, 이런 것도 중요하거든. 사람들하고 잘 어울릴 수 있겠어요?”

그때 케빈은 카이스트 레고 동호회에서 삼년 동안 총무일을 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자신의 사회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나는 대표 옆에 투명인간처럼 앉아 있다가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아야 했다. 카이스트, 레고, 총무. 그 어느 하나도 사교적으로 들리지 않는데. 총무가 아니라 회장이라면 또 몰라. 내성적인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 신발을 보고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더니. 이 세계에서 레고 동호회란 대체 뭐란 말인가. 크레이지 파티광쯤 되는 건가.

 

오후 한시 십분. 나는 사무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케빈이 매일같이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규칙적이고 로봇 같은지, 담배도 항상 같은 시간에만 피웠다. 나는 예상했던 대로 담배를 다 피우고 돌아서는 케빈과 마주칠 수 있었다. 케빈은 나를 보고 흠칫 놀라더니 내 손에 들린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 다스베이더 트랜스포메이션을 보고 한번 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레고 박스를 내밀면서 말했다.

“미리 생일선물이에요.”

머리로는 이걸 받아도 되나,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미 손은 레고 박스로 향하고 있었다. 알고리즘에 오류가 생긴 로봇 같았다.

“혹시, 이미 가지고 있는 건 아니죠?”

“아뇨, 없는 거예요. 안 그래도 사려고 했던 건데……”

배와 양손 사이에 박스를 끼워 넣고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던 케빈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케빈이 담배를 피우던 옥상의 가장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화단의 벽돌을 밟고 올라서서 바깥 풍경을 둘러봤다. 여기에서도 ‘ㅁ’자 모양의 건물이 보였다. 거북이알과 서 있던 이상한 육교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뒤돌아서서 케빈에게 말을 건넸다.

“코드를 좀 멀리서 보면 어때요?”

케빈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버그는 그냥 버그죠. 버그가 케빈을 갉아먹는 건 아니니까.”

케빈의 시선이 내 운동화 쪽으로 향해 있었다. 나는 화단에서 풀쩍 내려와 바닥에 두었던 쇼핑백에서 캡슐커피머신 상자를 꺼내 들었다.

“이거 탕비실에 놔둘게요. 같이 마셔요. 캡슐은 대식이한테 사달라고 하려고요.”

그 순간 케빈과 내 스마트폰 알림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우리는 주머니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들여다봤다. 케빈과 내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웃었다.

 

*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는데 퇴근한 줄 알았던 대표가 갑자기 들어와서 말을 걸었다. 금요일인데 왜 일찍 집에 가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할 게 좀 남았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대표가 감명한 듯한 얼굴이 되어서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광고만 붙이고 나면, 내가 돈 많이 벌어서 기획자 한명 더 뽑아줄게.”

“기획자 뽑기 전에 아이폰 개발자부터 뽑으세요. 제가 죽겠어요.”

“왜, 케빈 요즘도 안나한테 짜증 부리나?”

“말해 뭐해요.”

“케빈 이 새끼 이거, 오냐오냐해줬더니 안 되겠네.”

대표가 난데없이 케빈의 의자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바퀴 달린 사무용 의자가 사무실 입구까지 속절없이 굴러갔다. 케빈 앞에서는 절대 못할 행동이었다. 케빈이 퇴사한다고 하면 대표는 무릎이라도 꿇으면서 붙잡을 사람이었다.

“둘이서 하기도 힘든 걸 혼자 하고 있으니 본인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요. 걔가 뭐 스티브 잡스예요?”

“알겠어. 내가 광고만 붙으면 진짜, 아이폰 개발자도 뽑고 안나 후배도 뽑아줄게.”

나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종이컵 서너개를 한데 차곡차곡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데이빗, 저희도 이제 믹스커피 마시지 말고 캡슐커피 마셔요. 머신은 제가 가져올 테니까.”

“으응…… 그게 많이 비싼가?”

“당연히 믹스커피보다는 비싸죠. 대신 그만큼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겠어요? 자동차만 해도 일반 휘발유 넣는 거랑 고급 휘발유 넣는 거랑 차이가 날 텐데.”

대표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팔짱을 낀 채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한번 검토해보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볼게요.”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안나 눈치 진짜 많이 보는 거 알지?”

불쌍한 척은.

사실 야근하려고 남아 있던 건 아니었다. 루보프 스미르노바 리사이틀 예매가 아홉시부터 시작이었는데 집에 도착하면 아홉시를 훌쩍 넘길 것 같았다. 아예 회사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예매에 성공한 다음 마음 편히 퇴근할 생각이었다.

나는 예매 사이트의 서버 시계를 켜두고 21:00:00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고독한 조성진 채팅방에 접속했다. 들어가자마자 누군가가 ‘카네기홀 사진 고화질로 보내주세요’라는 문장이 쓰인 조성진 사진을 보냈다. 나는 내 맥북의 ‘쵸팽’ 폴더를 열었다. jpg, gif, avi로 된 수천개의 조성진이 모니터 위에 좌르륵 펼쳐졌다. 그중 하나를 더블클릭했다. 입을 오리처럼 오므리고, 앞머리를 찰랑거리며 연주하고 있는 gif 파일이 떠올랐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연주하고 있는 곡이 드뷔시의 「달빛」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완벽하게 잘생겼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우아하게 생겼을까.

이번에는 카네기홀 사진을 모아둔 폴더를 열었다. 그중 화질이 좋은 몇장을 채팅방에 보냈다. 그러자 또 금방 사진이 한장 도착했다. 그랜드피아노에 턱을 괴고 있는 조성진의 프로필 사진이었다. 여백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아홉시가 되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또 있었다. 몇달 전 예매해두었던 조성진 홍콩 리사이틀이 벌써 다음 달이었다. 공휴일과 주말, 그리고 아껴둔 연차를 하루 붙여서 삼박사일을 놀고 공연도 볼 것이다. 항공권 예매 사이트에 접속한 다음, 홍콩행 왕복 티켓을 결제했다. 조금 비싼가 싶었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 소설의 제목은 알랭 드 보통이 쓴 동명의 에세이에서 착안했다.


출처 : http://magazine.changbi.com/q_posts/%ec%9d%bc%ec%9d%98-%ea%b8%b0%ec%81%a8%ea%b3%bc-%ec%8a%ac%ed%94%94/?board_id=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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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ㅅㄴㅁ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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