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회색 중국어와 차부뚜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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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문제를 잘 처리하긴 했지만 후유증(?)은 예상보다 오래갔다. 녹색의 여권을 볼 때마다 벌금으로 날려버린 1,000위안이 생각났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런 중국어 실력으로 어딜 가서 무얼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들었다. 밥맛도 없고, 공부도 안 되고, 화도 나고, 오만가지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얻은 것은 있었다. 단편적인 언어 구사능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과 문제가 생겼다고 다른 사람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를 혼자 해결하자니 중국어가 안 되고, 중국어가 안 되니 도움을 받아야 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가 서로 상충했다. 결국,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뿐이었다. 거기에 중국인과 중국문화를 이해해야만 사전적인 의미가 아닌 실전에서 사용되는 중국어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

비자를 신청할 때 들었던 ‘메이원티’와 비자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할 때 들었던 ‘메이반파’만 봐도 그렇다. 이 두 가지의 사전적 의미는 ‘문제없다.’와 ‘방법이 없다.’지만 실제로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비자 담당자가 말한 메이원티는 비자를 해결해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비자를 처리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의미였다. 또 ‘문제없다.’라는 사전적인 의미 외에 ‘그냥 한번 해보자!’라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의미도 있다고 한다. ‘메이반파(방법이 없다.)’ 역시 방법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처리해달라고 요청하자 그제야 방법을 가르쳐 줬기 때문이다. 이때 이 선생님이 이야기한 ‘메이반파’는 ‘너 어디 한번 혼나봐라.’라는 심정으로 말한 것이다. 교육적인 의미에서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실제로 중국인이 사업상 이 말을 사용하면 진짜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사업상 거래 시 선수를 쳐서 우위를 점하고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 응수를 묻는 것이다. 마치 장기나 바둑에서 뜬금없는 수를 둬서 상대방의 다음 수를 묻듯이 말이다. 결국 ‘메이원티’는 절대 긍정도 아니고, ‘메이반파’가 절대부정도 아니다. 그러면 어떨 때 긍정의 의미이고 어떨 때 부정의 의미인지 어떻게 구별해 낼 수 있을까. 일단 이런 애매모호한 말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런 말이 나왔을 때 한 번 더 곱씹어보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이 한 방법이라 하겠다.

사실 이 두 단어 말고도 애매모호한 말들이 중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중국어의 특징이기도 하다. 처음 중국어를 접할 때 배우는 '하오.' 역시 좋다라는 의미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다. 협상 중에 나오는 하오는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그래 다음은 어떻다는 거냐?"라는 의미도 있다. 협상 중간마다 나오는 이 하오를 막연하게 ‘좋다.’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해 낭패를 보는 때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좋다는 의미의 하오를 말한다고 해도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우리말로 따지면 ‘조~옷네’나 ‘자~알 한다.’라는 역설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연구해보다.’의 ‘이엔지우이엔지우(硏究硏究)’는 완곡하게 거절할 때 쓴다. ‘고려해보다.’의 ‘카오뤼카오뤼(考廬考廬)’는 전혀 고려치 않을 수도 있다. ‘생각해보다’의 ‘샹이샹(想一想)’은 생각해보긴 하는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 역시 물건살 때 이 말을 쓰기도 하는데 대부분 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지번샹메이원티(基本想没问题)’는 기본적으로 문제인 경우가 많다. 역시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처럼 중국인들의 생활과 언어, 사고에는 이 같은 모호한 습성인 회색지대가 숨어 있다.

그나마 이 네 가지는 우리말에도 비슷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중국인이 정말로 자주 사용하면서도 해석하기 진짜 애매모호한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차부뚜오(差不多)’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시간, 정도, 거리 등이 ‘비슷하다, 가깝다, 큰 차이가 없다, 괜찮다.’라고 해석하고 부사로는 ‘거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차부뚜어는 어떠한 질문에도 사용할 수 있는데 듣는 사람한테는 해석하기가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다. 딱 부러지지 않고 두루뭉술한 답변이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떤 물건이 좋은지 물어보면 차부뚜어라고 이야기한다.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인데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말한 사람만이 안다. 숙제 했냐고 물어보면 ‘차부뚜어 완르’라고 대답한다. 거의 다 했다는 이야기인데 언제 끝마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착했냐고 물어봐도 차부뚜어다. 도착하긴 하는데 언제 도착할지는 모른다. ‘스지엔 차부뚜어르’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하는데 시간이 가까워졌다, 즉 갈 때가 됐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차부뚜어는 언제 어느 때고 사용할 수 있는 만능 언어이다. 전라도의 ‘거시기’와 쌍벽을 이룬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거시기의 방대한 의미에 비하면 ‘차부뚜어’는 구분을 짓지 않을 때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이 차부뚜어는 여지없이 나온다. 중국어는 엄청나게 많은 한자 때문에 비슷한 말이 다른 용법으로 사용되곤 하는데 이 용법을 공부하는 게 만만치가 않다. 한번은 인도네시아 친구가 차별(差别), 차이(差异),구분(区别) 등 세 단어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그날 그 선생님의 기분이 안 좋아서인지 그의 답변이 바로 차부뚜어였다. 이 얼마나 불명확하지만, 말이 되는 답변인가.

‘차이가 있지만 비슷하다.’

차부뚜어는 그냥 단순한 ‘비슷하다.’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이 말에는 중국인들의 사고와 역사, 문화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세세한 걸 따지지 않는 대륙적인 기질과 원만하고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중국인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쁘게는 말하면 매사 세밀하지 못하고 따지는 걸 귀찮아하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않는 중국인의 기질을 잘 보여준다. 

당신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으며, 전국 방방곡곡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성은 차(差), 이름은 부뚜어(不多)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중국어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메이원티는 그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메이반파는 방법이 없는 것으로 배운다. 주문한 음식이 맛이 있냐고 물으면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하이커이(괜찮다)’나 ‘하이씽(괜찮다)’ 혹은 ‘차부뚜어’라는 대답을 들을 뿐이다. 맛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아야 다음에 또 오든지 말든지 할 텐데 이 말로는 알 수가 없다. 푸다오 친구에게 내 중국어 실력이 어떠냐고 물어봐도 들리는 답변은 두루뭉술한 ‘하이씽’이나 ‘하이하오(괜찮다)’다.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닌 대답인데 중국에 온 지 한 달이 됐을 때나 1년이 넘은 지금이나 대답은 같다. 부탁할 일이 있어서 이야기하면 ‘커이’라고 대답한다. 가능하다는 이야기인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중국어의 그 속뜻까지 알아내려면 중국어에 드리워진 회색 그림자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걸로는 알 수가 없는 내용이다. 결국, 중국의 문화와 역사는 물론 먼저 온 선배들의 경험까지 두루 알아야만 이 회색지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가 있다. 학교 수업만도 벅찬데 이 회색 중국어까지 배우려니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이제 막 중국어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검은색인지 흰색인지 모를 뿌연 회색지대에 빠지고 말았다.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이는데 언제쯤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누가 이런 말을 물어본다면 나 역시 화끈(?)하게 대답해 줄 수 있다. ‘메이원티!’라고.



https://news.g-enews.com/view.php?ud=201706151506557363d6eb469fd3_1&mobile=1&md=20170615152557_R

이를 쉽게 풀이하기 위해 베이징대학 초대 총장을 역임했던 후셔(胡适) 교수는 '차부뚜어선생전(差不多先生傳)'이라는 작품으로 이해를 도왔다. 작품은 차부뚜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의 일생을 그렸는데, 그의 일생을 통해 차부뚜어가 어떻게 사용됐으며, 왜 중국인들의 정서에 차부뚜어가 스며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

차부뚜어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황설탕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황설탕이 아닌 백설탕을 사왔고, 어머니의 다그침에 "백설탕이나 황설탕이나 차부뚜어 하지 않으냐"고 답하며 어머니를 황당하게 몰아부친 사건이 있었다.

이후 그가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쯔리셩(直隶省. 허베이성에 있는 지명) 서쪽은 무슨 성이냐"라는 질문에, 그는 '산시(陕西. 섬서)성'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틀렸다. 답은 산시(山西. 신서)성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부뚜어는 "섬서나 산서나 똑같다. 차부뚜어하지 않나요"라며 반문했다. 중국어에서 섬서와 산서는 발음은 같지만 앞글자인 '산'자의 성조가 각각 3성과 1성으로 다른 특징이 있다.

 이후 차부뚜어가 성인이 되어 취직해 상점에서 회계업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생활화해오던 '차부뚜어'로 인해 세밀함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열십十'자를 종종 '일천千'자로 썼고, 千자를 종종 十자로 바꿔 쓰기도 했다.

주인은 화를 내면서 그를 나무랐지만 차부뚜어는 이때에도 "千자는 十자에 비해 겨우 획 하나만 더 있을 뿐인데, 차부뚜어 하지 않은가요"라며 웃으면서 넘겼다.

어느덧 노인이 된 차부뚜어가 병에 걸려, 하인을 시켜 동쪽 거리에 있는 '汪(왕) 의원'을 불러오라고 시켰다. 하지만 하인은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서쪽 거리로 향했고, 그곳에서 수의사인 '王(왕) 의원'을 데려왔다.

이때에도 차부뚜어는 "汪(왕) 의원이나 王(왕) 의원 모두 차부뚜어하니 그냥 수의사인 王(왕) 의원에게 치료를 맡겨 보자"고 했다. 결국 수의사에게 자신의 병을 맡긴 차부뚜어는 더욱 위독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이 점점 희미해져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차부뚜어하다. 모든 일이 차부뚜어 한 것이 좋은데, 뭐 하러 그리도 심각하게 사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이렇게 차부뚜어는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고, 이후 사람들은 그가 일생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살지 않고, 적당한 덕행도 쌓으면서 살았다는 것을 기리며, 그를 원통대사로 칭하고 그가 살아온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훗날 그의 이야기는 점점 넓게 퍼져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신을 본받아 살게 됐다. 그로인해 중국이 '만만디(慢慢的, 매사가 느리다)'의 나라가 됐다는 이야기다.

최근 차부뚜어는 중국인들과의 사업적인 거래에서도 많이 쓰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리대로 행한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때로는 우유부단하거나 느릿한 행동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상업적으로 제품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의를 제기하면 무조건 돌아오는 단어가 바로 차부뚜어이기도 하다. 중국인의 특성에 이처럼 꼭 맞는 단어도 드물다.

김길수 기자 gskim@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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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ㅅㄴㅁ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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