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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네마 레터/ 센과 치히로의 ‘터널’

이동진기자

 

 

삶의 한고비 넘으려면 지나간 일은 잊으세요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낸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저승을 빠져나갈 때까지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봅니다. 이로 인해 일은 마지막 순간에 수포가 됩니다.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가 불로 심판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됐으니까요. 우리에게도 오만한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장자못 전설’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지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神)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바깥 세상으로 이어지는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결코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주문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동서고금의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이란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될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至難)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돌이켜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잘못 놓인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堆層)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지요.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고 했고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리가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리를 ‘더하기의 통로’라 한다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건 얻어낸 걸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줄여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일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윤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보지 마라. 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돌아 봅니다. 그러나 그리 해서 쓸쓸히 확인한 건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시길. 진정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시길. 터널을 통과한 뒤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본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시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8/25/20020825702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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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ㅅㄴㅁ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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